바이오헬스 분야 규제 개선 중장기 정책 마련을 위해 의료계‧학계‧산업계가 모여 머리를 맞댔다.

환자들의 진료받을 권리 확대를 위해서는 혁신 신약‧의료기기 개발과 도입을 막는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졌으며, 특히 신의료기술평가와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개선, 혁신 지향 의료 생태계 조성 등이 과제로 꼽혔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지난 6일 ‘바이오헬스 규제개선 중장기 정책방향’을 주제로 제13회 헬스케어 미래포럼을 개최했다.

연세대 글로벌인재대학 곽노성 교수가 '바이오헬스 규제개선 중장기 방향'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발제를 맡은 연세대 글로벌인재대학 곽노성 교수는 바이오헬스 분야 과잉 규제 피해자는 국민이라며 명분이 아닌 실리, 담론보다 사례 중심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명분보다 실리, 담론보다 사례 중심 논의 필요

곽 교수는 ▲신의료기술평가 ▲기관생명윤리위원회 ▲의료정책 분야에서 각각 바이오헬스를 규제하는 상황에 대해 짚었다.

우선 신의료기술평가와 관련해 새로운 의료기기와 의약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가 필요한 점이 국내 헬스케어 산업의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곽 교수는 “한국은 환자가 (신의료기술에 대한 비용을) 전액부담해도 국가가 사전에 허용하지 않으면 진료하지 못한다”며 “선진국은 국가가 금지하지 않으면 진료가 가능하다. 우리만 신의료기술평가를 사전 규제로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카바(CARVAR) 수술은 안전 논란이 있어 신의료기술평가를 통해 금지됐는데, 어떤 심장수술이 안전한 수술인가”라며 “(행위에 따른 안전이 아니라) 수술은 전문가인 의사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 간 경험, 능력 차이가 위험에 직접 영향을 주게 된다. 즉, 의료에서 안전 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곽 교수는 “신의료기술을 통해 정부의 의료행위 관리는 용이해지고 사회적 논란은 최소화할 수 있지만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는 해외로 나가야 하며 의료계 혁신 분위기는 위축된다”며 “의료는 위험관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환자의 진료받을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 교수는 또 재생의료시술 제한 역시 환자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며 이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확대 방안으로는 ▲신의료기술평가 사전규제 폐지 ▲일본식 재생의료기관 등록 규제 신설 ▲환자에게 비용청구 금지 규정 폐지 등을 제안했다.

곽 교수는 “국가가 희귀질환자 모두에게 (신의료기술을) 무료로 (적용)해줄 수 없다면 금지 규제를 푸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생명윤리위와 관련해서는 윤리와 과학 간 혼란스러운 관계를 언급하며 과학적 관점에서 연구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정책 분야에서는 ▲보장성 강화 중심의 정책 방향 ▲의사과학자 양성의 어려움 ▲원격의료 등 디지털의료 기피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곽 교수는 “고령화에 따른 건강보험 부담이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의료) 효율성을 높이는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디지털 전환을 통한 비용 절감은 필수이며 거동 불편 고령환자 등을 위한 비대면 의료 역시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 교수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산업 패러다임은 물론 우리 생활 전반을 바꿀 것”이라며 “의료분야에서도 이미 진행 중이기 때문에 혁신에 맞춰 의료수가체계 개편이 필요하다. 특히 경영난을 겪는 대학병원이 혁신할 수 있도록 여유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곽 교수는 “의료 혁신은 재정적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며 “대학병원이 적자를 걱정하지 않아야 혁신이 가능하다. 건보재정으로 충분한 지원이 어렵다면 기술 사업화를 통해 재정적 여유를 갖게 해야 하며, 이것이 헬스케어 규제개혁이 필요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곽 교수는 “안전‧윤리‧효율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위험이 의료의 본질이라는 것을 잊고 과학‧혁신에 소홀할 수 있다”며 “기술이 있지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의료계가 혁신을 기피하면 가장 큰 피해는 국민과 환자에게 돌아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곽 교수는 규재 개선 중장기 방향으로 ▲위험관리 차원의 의료정책 ▲환자의 진료받을 권리 보장 ▲과학적 관점에서 연구자율성 확대 ▲혁신 지향 의료 생태계 조성 등을 제안했다.

신의료기술평가생명윤리위 개선, 혁신 지향 의료생태계 조성 필요

발제에 이은 토론에서도 신의료기술평가, 생명윤리위, 혁신 지향 의료생태계 조성 과제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울산의대 예방의학교실 조민우 교수는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적절한 시기에 제공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며 “외국의 경우 보험급여할 항목을 정해 (건보) 재원을 투입하고 나머지 행위에 대해서는 자율성을 준다. 우리나라도 이런 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산업연구원 최윤희 선임연구위원은 “바이오헬스분야는 기술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분야기 때문에 기술 혁신 속도에 비해 규제 개선 속도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며 “기술 혁신과 규제 개선 간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국민건강과 복지를 위한 혜택이 없어질 수 있다. 기술 혁신 의지를 퇴행시키지 않기 위해 규제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생명윤리학회 김옥주 회장(서울의대)은 생명윤리위 문제를 집중 지적했다.

김 회장은 “생명윤리위제도는 1974년 미국에서 시작됐는데, 당시는 한 기관에서 모든 연구가 진행되기 때문에 가능했던 제도”라며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전세계 여러 나라, 여러 기관에서 동시에 임상시험이 진행되기 때문에 생명윤리위가 제 기능을 못한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중앙 생명윤리위제도가 만들어지고 활용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필요성을 인식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도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임상시험 시) 각 병원에서 심의 여부를 결정하게 해 옥상옥이 돼 버렸다. 이런 문제는 해결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스마트헬스케어협회 김문구 미래사업본부장은 “보건의료데이터 활용을 위해 정부가 최근 ‘마이헬스웨이’ 시스템 구축 시범사업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식별정보 활용 등의 문제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등의 분야에서 좋은 기획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개인정보보호법상 규정으로 기획 의도와 다르게 진행되는 경우가 안타깝다”며 “이런 부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 김형욱 회장은 “헬스케어분야로 수익을 창출하려면 결국 건강보험 수가가 있어야 하는데 디지털치료제에는 보험수가 책정 사례가 없어 산업계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시장 형성이 안된다”며 “이 분야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수가를 적용받기 위해 너무 많은 평가를 받아야 하고 허들이 너무 높다”며 “우선 진입을 허용하고 사후 평가하는 제도 개선을 통해 혁신기술 도입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 특히 다지털치료제 수가를 탄력적으로 적용 후 차후 임상데이터 보환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엄승인 정책본부장은 “규제 때문에 (바이오헬스 분야의) 혁신성이 제한되면 안된다. 첨단바이오의약품, 의료기기 등이 개발돼 환자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테라젠바이오 황태순 대표는 “우리나라는 바이오헬스 분야에 여러 중복 규제가 있다. 현장 의견을 들어 규제조직 등 정부부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고려의대 혈액종양내과 김병수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바이오헬스분야에 대한 규제가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규제 개선에 앞서 국제기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하고 있어 특수한 상황이지만 바이오헬스산업 규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국제적으로 기본이 되는 규제에 대해 연구자와 산업계 모두 제대로 알 필요가 있으며 이와 관련한 교육과 계도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무조건적인 규제 개선이 아니라) 규제와 규범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합리적 규제 개선 위해 현장 어려움 더 파악해야

한편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 정은영 국장은 “바이오헬스 분야 규제 개선은 어제 오늘 논의된 것이 아니다. 신의료기술만 하더라도 그동안 많은 규제 개선이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을 이야기 하고 있다”며 “(앞으로 규제 개선을 위해) 현장의 어려움을 더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정 국장은 “보건의료데이터 활용과 관련해서는 별도 입법을 준비 중이다. 민감정보를 안전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균형잡힌 법 적용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내용 검토 중으로 (안이 마련되면) 향후 논의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정 국장은 “기술 혁신 속도가 빠른데 규제가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합리적인 규제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포럼을 통해 제시된 의견들을 좀 더 자세히 정리해 주면 전문적으로 논의해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